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니, 초보 농부인 저에게는 일 년이 마치 꿈꾸듯 빠르게 지난 듯합니다. 김장 채소 수확을 끝으로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고 내리는 눈과 함께 휴식기에 들어가는 것이 농부의 일상인데, 내년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뤄야 할 과제들이 많아 마음이 여전히 심란합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고춧대와 지지대 등의 시설을 정리한 다소 황량한 모습입니다. 봄부터 여러 시설을 설치하고 작물을 키우면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치우고 보니 겨우 이만한 공간에서 그랬나 싶어 다소 허무한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내년에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올해 농사를 정리하려 그간 촬영한 사진들을 보니, 이제까지 살면서 한 해동안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혼자 힘으로 해본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많은 일을 못했지만 많은 일을 해내기도 했던 한 해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밭 만들기(3~4월)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기를 임대해 두둑 만들기 작업을 했습니다. 머릿속에 구상한 미래 농장의 모습을 생각하며 밭의 모양을 계획했는데, 폭넓게 길도 내고 두둑 방향도 동서에서 남북으로 변경한 것은 잘한 일 같습니다.
♣ 느낀 점
- 3~4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일이 많아져 바쁘기 때문에 2월 말에 두둑 만들기를 시작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예상한 시간보다 오래 걸려 다른 일정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 경사 때문인지 경운(로터리) 작업보다 구굴 작업(고랑 파서 두둑 만들기)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구굴용 바퀴는 좁은 편이라 관리기가 옆으로 잘 넘어갑니다.
- 관리기와 반듯하게 서서 후진하며 작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구굴 작업은 관리기 옆 방향에 서서 작업하니 조금 더 편했습니다.
♣ 문제점
- 두둑 넓이를 잘못 만들면 제초매트가 덜 덮여서 풀이 자라는 경우가 생깁니다.
육묘 - 모종 키우기(3월~4월)
고추 모종은 친환경 유기농 전문 육묘장에 예약해 걱정이 없었으나, 나머지 작물들은 씨앗을 파종해 직접 모종을 키워내야 했습니다. 전문 육묘 시설이 아니라 어려움이 많습니다.
♣ 느낀 점
- 안정적으로 모종을 키울 수 있는 온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3~4월의 낮 온도는 뜨겁고 밤은 추워서 모종 성장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 모종에 물 주는 법은 아직도 많이 어렵습니다. 과습이 발생하거나 수분이 모자란 경우가 있었습니다.
♣ 문제점
- 육묘 시 온도 관리, 영양 및 수분 관리의 어려움
관수시설 만들기(3월~4월)
1톤 화물차를 운전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데 물탱크를 어디서 구매하고 어떻게 싣고 와서 설치하며 혼자 가능한 작업인지도 분명치 않았습니다.
♣ 느낀 점
물탱크 크기는 1백 평당 1톤으로 계산해 필요한 크기를 결정하면 된다고 하여 5톤 크기를 구매했습니다. 지역에서 비교적 큰 농자재 마트를 찾아가니 트럭에 친절하게 실어 주었습니다.
♣ 문제점
관수 시설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시설 설치에 어려움이 많았으며, 설치 이후에 사용하며 발생하는 문제에 대처하는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고추 지지대 세우기(6월)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인 대상으로 받을 수 있는 농자재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농업용 파이프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오래된(대략 16년) 중고 화물차에 10미터 농업용 파이프 25미리(1.5t) 70개를 싣고 차량이 제일 적을 것 같은 시간을 선택해 밭까지 살금살금 기어 왔습니다. 농자재마트에서 익숙한 솜씨로 튼튼히 묶고 안전을 위한 테이프까지 앞 뒤로 둘러 주셨습니다. 방지턱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살살 지나가야 한다는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 느낀 점
- 다량으로 농업용 파이프를 절단하려면 금속 절단기가 필요한데, 없거나 구매가 부담스럽다면 유선 그라인더와 그라인더 스탠드로 금속 절단기를 대신해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 인발 파이프(1m)를 이용해 지지대 파이프를 연결하니 파이프를 박으면서 가해지는 손상이 적었습니다.
♣ 문제점
- 길었던 장마 탓에 두둑에 물이 스며들어 고추나무가 옆으로 기우는 현상이 생겨났습니다. 고추나무를 확실하게 고정해 줄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고추 건조하기(7월~8월)
고추 수확은 전지가위로 꼭지 부분을 잘라 제초매트 위에 떨구고 한 번에 담았습니다. 예전에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손으로 하나씩 따는 방식과 비교하니 작업 시간도 짧고 일도 수월했습니다.
♣ 느낀 점
- 전용 건조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원래는 올해만 사용하고 내년부터 창고로 사용하려 했던 비닐하우스를 고추 건조장으로 변경하고 시설도 보완해야겠습니다.
- 수확한 고추를 세척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전용 세척기를 구매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 문제점
- 고추 세척 및 건조를 위한 보다 나은 시설이 필요해 보입니다.
작업동 창고용 비닐하우스 짓기(11월)
관수시설 및 전기 시설 설치를 위한 작업동 비닐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5톤 물탱크를 제외한 모든 관수 시설을 작업동 안으로 옮긴 후에 개선된 배관 설치 및 컨트롤 박스등을 활용해 작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들 예정입니다.
폭이 4미터이고 길이가 10미터(처마 포함 대략 12미터)인 하우스를 25미리 중고 파이프를 이용해 지었는데 업체에 맡기는 비용 대비 50% 정도 들어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문 업체의 경우 32미리 파이프로 튼튼하게 지어주며 빠른 기간에 완성하다 보니 비용 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뿌듯한 건 초보 농부라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다음에도 계속 필요한 시설을 지어나갈 생각입니다.
♣ 느낀 점
- 비닐하우스 혼자 짓는 건 가능하지만 어렵고 오래 걸림며 전문업체에 맡기는 것보다 결과물이 좋지 않았음
- 뼈대 작업보다 피복 작업이 더 어려운 것 같음
♣ 문제점
- 배수로 및 평탄화 작업이 덜 되어 보완 작업이 필요함
- 문이나 창문 등의 최종 마감을 나중에 하려고 미뤄놓은 상태인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으로 보임
지줏대 뽑기(11월)
올해 느낀 여러 가지 개선할 점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 밭의 경사도가 심한 부분(비탈진 밭)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경사도가 높은 부분의 흙을 퍼내어 3~5도 이하로 만들어야 하는데,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부랴부랴 작업동 비닐하우스를 만들었고 밭 해체 작업 후 자재를 보관했습니다.
♣ 느낀 점
- 밭을 만들 때 햇빛의 방향, 바람의 방향, 밭의 모양, 경사도(평탄화 여부), 배수로, 작업로 등 생각할 것이 많음
- 무경운 밭을 만들어 매년 시설물이나 작물을 치우는 일을 줄이려고 했는데, 한 번에 만들기는 어려웠음.
♣ 문제점
- 무경운 밭을 첫 해에 만족할 만큼 만들기는 어렵고,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임
휴경기 마무리와 계획
귀농한 초보 농부가 농사를 지으며 겪은 어려웠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한 해 농사가 끝날 때마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 농장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환경과 기술을 30% 이상 개선한다면 소규모로 시작했지만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요. 스스로 다짐하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글을 써보았습니다.
많은 일을 놓침과 동시에 이룬 한 해였는데 부족한 점들 개선하며 목적한 곳으로 한발 한발 내딛어야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잘 마무리하시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며 여기까지 적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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